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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으로 나라를 강력하게 하려한 클레오파트라

아름다움으로 나라를 강력하게 하려한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는 서양을 대표하는 미인이었다고 하는데 대영박물관에 있는 두상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7개 국어에 능통할 정도로 교양이 있으며 로마의 두 실력자를 좌지우지한 것은 사실이다.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52년 17세에 아홉살인 동생과 결혼하여 이집트 왕이 되는데, 당시는 강대해진 로마가 이집트를 삼키려 하던 때였다. 그녀가 왕에 즉위한 지 5년 후 로마의 실력자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에 패해 이집트로 도망쳐오면서 이집트는 로마의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로마에 반감을 품은 이집트인은 폼페이우스를 살해했고 뒤쫓아 온 카이사르도 푹도로 변한 민중들의 습격을 받아 간신히 왕궁으로 피신했다. 그때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젊음을 무기 삼아 카이사르의 권력을 이용하려는 결심을 한다.

 

 

 

 

그녀는 나체가 된 자신을 선물로 포장하게 하고 심복에게 어둠을 틈타 카이사르의 방으로 가져가게 했다. 52세의 카이사르가 22세인 클레오파트라의 젊음과 세련된 매너에 포로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아이를 출산하고 카이사르는 로마로 개선한 후 클레오파트라와 아이를 손님 자격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아내와 함께 살도록 했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자 클레오파트라도 이집트로 돌아갔으나 이번에는 새로운 실력자가 된 안토니우스를 유혹하여 동지중해를 제패하려 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가 덧없이 옥타비아누스에 패하는 바람에 야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실의에 빠진 클레오파트라는 독사로 하여금 가슴을 물게 해 39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